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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19세기 중에 오늘날의 공작기계가 거의 탄생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공작기계는 개량되어 두드러진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으며, 여러 분야에 채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공작기계산업은 1970년대 초까지는 단순 부품가공 위주의 저급품 생산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창원기계공업기지’가 건설 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어 시설.운영.생산능력 면에서 대형화되었고, 품종 다양화와 품질향상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방위산업과 관련된 전략업종으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규모의 업체가 참여 하기 시작하여 1990년 생산 1조원, 수출 1억불을 돌파하였으며, 2011년 사상 최대인 생 산 6조원, 수출 20억불 돌파 기록을 세웠습니다.
구한말부터 기계공업이 시작되면서 비상품으로 제작되다가 해방이후 공작기계공업의 선구자격인 화천기공사, 대구중공업, 광주남선선반, 남선기공사 등의 기업들이 창립된 시기이며 벨트식 선반, 밀링기, 드릴링기, 세이퍼 등 범용공작기계를 생산하였습니다.
· 공작기계 선반의 원형인 ‘도차’가 김해지역에서 발견
– 직립 회전부 상부에 원반을 고정한 후 토기재료를 올려놓고 함께 돌리면서 축대칭형으로 깎아내는 장치
· 6세기 신라시대 ‘녹로’ 일본에 전파
– 수평축에 여러 번 감은 가죽 끈 또는 로프 등을 당겨 목재그릇 가공
–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공인의 기술을 일본에 전수
· 1899년 경인철도 개설과 더불어 공작기계 최초 등장
– 철도 개통을 계기로 철도차량 보수를 위한 용산공작반이 발족, 현대식 공작기계 처음 사용
· 1927년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범용연삭기(?510mm) 최초 제작, 공작기계 효시
· 1940년까지 공작기계 제조사 12개사
– 조선기계제작소, 관동기계제작소, 조선중공업 등
– 일제가 전쟁확대로 인해 철도차량, 선박기관, 조선업 등 기계산업 생산액 2배 증가
· 1945년 해방이후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일제 강점기 군수공장 시설 대부분 폐기, 상당 수 근대식 공업시설과 공업생산 기반 사라짐
– 공작기계 보유현황 : 남한 8,648대(68.2%), 북한 4,014대(31.8%)
·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영남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산업시설 황폐화
· 1953년 휴전협정 체결
· 1954년 국제연합(UN)과 경제원조와 관련한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협약체결하고 경제부흥정책 추진
· 1955년 국내 공작기계 수요는 5,140만원 중 생산이 730만원, 수입이 4,410만원 85.8% 차지
· 1950년 중반 이후 산업시설 복구 및 확충으로 기계공업 성장, 공작기계 수요 증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과 함께 공업화의 기수로 자립경제 기반를 구축하여 범용 선반을 최초로 미국에 수출하였고, 경제개발 2차계획의 개시년도인 1967년「기계공 업진흥법」이 제정되어 자금지원 등에서 큰 혜택을 받아 공작기계공업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에 따른 중화학공업 투자제고에 의해 산업설비가 확대됨에 따라 급격한 생산증가를 가져와 1966년 22억원 규모에 불과하던 내수 시장이 1971년에는 107억원으로 증가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서는 세계경기의 후퇴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 1960년 수요는 1억 7,500만원대, 국내 생산 9,700만원대 수입 7,800만원으로 자급도 55.4%
·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 수입대체와 수출산업 육성, 사회간 접자본 확충 목표
– 공작기계 생산은 총 726대(선반 555대, 세이퍼 8대, 전단기 8대, 프레스 125대)
· 1927년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범용연삭기(?510mm) 최초 제작, 공작기계 효시
· 1940년까지 공작기계 제조사 12개사
– 조선기계제작소, 관동기계제작소, 조선중공업 등
·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 소비재산업 수출 강화 및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 소재 및 자본재산업 육성
– 공작기계 보유현황 : 남한 8,648대(68.2%), 북한 4,014대(31.8%)
· 1967년 3월 기계공업진흥법을 제정하여 기계공업 육성에 필요한 법적기반 마련
– 자동차, 철도차량, 선박과 함께 공작기계산업도 특정기계공업으로 지정하여 정부의 자 금지원 혜택
· 1967년 무렵 공작기계 생산업체는 총 49개사로 이중 16개사가 경남지역 위치
1973년 1월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에 의해 기계공업이 중점 주도사업으로 선정되었 으며, 기계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창원기계공업기지를 건설하여 공작기계산업 발전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공작기계업계의 현황은 유아단계였으나,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으로 1976년 부터 1979년 사이에는 설비투자가 158%, 생산이 84.1%증가했고 수출은 167.9% 급신장 하였고 생산기반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술도입과 기술축적이 이루어졌으며 전문화와 계열화가 추진되었고 대기업의 참여가 이루어졌습니다.
· 1970년 상공부에 의해 전국 공작기계 전문화업체 지정, 공고
· 공작기계 수출은 1964년($52,000), 1965년($71,000), 1966년($71,200) 기록
· 공작기계 내수는 경제개발로 인하여 1966년 21억 9천만원에서 1971년 106억 8천만원으로 대폭 증가
· 1972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 중화학공업 육성 및 수출 증대
· 1973년부터 창원기계공업단지를 중심으로 기계공업 육성시책 추진
– 기계단지 활성화를 위하여 입주업체에 세제와 금융상의 지원 강화
– 공작기계 전문공장 지정 : 대한중기공업, 대우중공업, 화천기계공업, 동명중공업, 기아기공 등
· 1973년부터 추진된 중화학공업화정책으로 설비투자 확산으로 공작기계 내수 증가
– 공작기계 내수가 ‘74년 290억원에서 ’79년에는 1,986억원으로 대폭 증가
– 공작기계 생산은 ‘74년 70억원에서 ’79년 551억원으로 6배 증가
– 70년대 중반까지 생산기종은 선반, 밀링기, 드릴링기 등 범용기 생산
– 70년대 말 이후에는 국내업체들 기술개발 노력으로 전용기와 함께 NC선반, 머시닝센터 생산 가능
1980년 한국경제개발사에 유례없는 부의 성장은 공작기계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 1980년대 후반 들어 3저 호황에 따른 기계, 자동차 산업의 설비투자 활성화와 설비투 자 공제제도 실시 등으로 국내 공작기계 산업은 호황국면에 접어들어 1990년 초반까지 건실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 1980년 중반 이후 공작기계 성장
– 공작기계 주요 수요업종인 자동차산업의 내수 호조와 대미수출로 공작기계 수요증가
– 내수시장 규모는 ‘85년 3,676억원에서 ’88년 1조원 시대 진입
– 공작기계 생산도 ‘85년 1,850억원에서 ’89년 8,297억원으로 증가
– 공작기계 수출도 NC기종 수출증가로 ‘89년 8,045만불
· 해외기업과의 기술제휴
– NC공작기계 개발과 생산에 대해 일본, 미국, 독일로부터 기술 도입 적극 추진
– 기종별로는 1970년 말 이후로 전용기, NC선반, 머시닝센터 등
· 주요 핵심부품의 국산화 진행
– NC장치, 서보모터 등 주요 핵심부품 국산화 추진
– 1980년 초 통일이 자체 공급용 NC장치 생산, 한국산업전자가 1989년 국산 NC장치 개발성공
– 이외 한국화낙, 금성계전, 터보테크, 현대중전기 등에서 NC장치 개발 추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시장과 국제 시장에서 활발한 판매와 생산활동이 이루어져 하이테크산업으로의 재도약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생산실적 면에서는 1997년 하반기 터진 IMF 때문에 1998년도는 6,831억원의 매우 저조한 생산실적을 기록하였지만 1999년도에 들어서 시설재 투자의 증가로 8,622억 원의 실적을 실현하며 빠른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 정부주도 기술경쟁력 강화 지원정책 추진
– 1992∼2001년 G7 프로젝트사업(2000년대 특정분야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진입)으로 FMS, CIM, IMS의 단계적 추진
– 1996∼1999년 중기거점기술개발사업(핵심부품 등의 기술개발 투자지원)으로 CNC장치 개발
– 1998∼2003년 기계류/부품소재 등 핵심자본재의 내수시장의 자급도를 80% 이상 확대를 목표로 핵심자본재 국산화 5개년 계획 추진
* 핵심자본재 대상품목 : 머시닝센터, 방전가공기 및 각종 NC공작기계 등 86개 품목의 국산화 추진
· 1990년 중반 이후 성장세 유지
– 공작기계 수요가 1995년 들어서 최초로 2조원대 진입
– 생산 규모는 1996년 1조 5천억에 이름
– 1996년 공작기계 생산은 1조 5천억원(세계 13위→9위)
– 수출은 4억5천만불(세계23위→10위), 수입은 17억1천만불(세계 4위)
– 소비시장 규모는 24억 7천만불(세계6위), 순위는 1990년 대비
· IMF 시기 공작기계산업
–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 요청
– 수요업체들 퇴출과 생산 축소로 1998년 내수는 60.2% 감소한 2,802억원, 생산 11%감소
– 1998년 한해에 협회 회원사 기준으로 22개 업체가 부도 또는 사업포기, 부도율 19.6%
· 공작기계 기술은 1990년대 NC 국산화 비율은 65% 정도, 핵심부품인 NC장치, 서 보모터, 볼스크류, LM베어링 전량 수입
· 수입선다변화제도 해제
– 1999년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규제하는 수입선다변화제도 해제로 일본으로부터 NC기종 수입 증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공작기계 산업의 기술은 고속, 고정도, 고능률화, 환경친화의 방향 으로 혁신을 지속하고 있으며, 또한 IT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CNC 기술의 오픈화 및 네 트워크화를 통한 다양한 통신기능이 부가됨으로써 설계, 영업 및 서비스정보와 연계시 켜 통합제어를 통한 타지역의 공작기계를 원격제어 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IT산업에 있어서의 설비투자와 IT 활용 산업에 있어서의 IT 기기에 대한 투자 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양자가 상승효과를 발휘하며 IT산업의 공작기계 수요도 한층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전반적인 세계경기 침체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IT 관련 산업, 자동차 부품, 금형 등 공작기계 수요업종의 경기 상승으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 이며 2000년 이후부터 연간 1조원이 넘는 생산량을 꾸준히 달성하였고 2011년에는 사 상 최대인 6조원을 돌파하였습니다.
· 글로벌 확산과 FTA 체결 – 개방화 추세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산
* 2004년 칠레와 FTA, 2005년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와 FTA 체결 등
· 공작기계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
– 1999∼2008년 차세대 생산기반기술인 미세소성가공, 미세금형가공기술 개발사업 지원
– 1999∼2004년 고속지능형가공시스템 개발, 공통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
· 중국시장 급부상, 공작기계 수출 급성장
– 2003년 이후 중국특수로 인해 공작기계 수출이 ‘03년 62%, ’04년 43%, ‘05년 20% 지속 적 증가
· 공작기계 사상 최고치 실적기록
– 2005년 자동차산업 호황과 세계 경기호조로 생산 3조 6천억원, 수출 11억 5천7백만불 기록 무역수지 흑자 달성
· 생산 및 수출 기종이 NC선반과 머시닝센터, 프레스에 집중, 전체 비중의 62%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