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곡관

3대 경영

회사의 현관에 들어서면 설립자인 고(故) 손중만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그 뒤편으로 ‘개인은 가도 기업은 영속시켜야 한다’는 경영이념이 새겨져 있다. 그 이념대로 이 회사는 3대 경영을 통해 창사 63주년을 넘겼다.

손종현 남선기공 회장은 창업자의 아들이다. 지난 1971년 3월 대학졸업과 함께 이 회사에 입사했다. 1987년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이후 대기업이 과점하던 국내 공작기계 시장에서 대기업을 앞선 중소기업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1993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회사를 방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작기계산업이 대전지역 뿌리산업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온전히 남선기공 덕분이다.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내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선기공은 ‘국내 최초’를 달고 다닐 정도로 많은 제품을 개발했다. 이런 공로로 대통령상을 다섯 차례나 받았다. 해마다 한층 진화된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돈 많은 기업은 망할 수 있어도 기술 있는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게 손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상의 활동 30년 “행사 빠진 적 없고 외국인 대접 도맡아”

손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성공한 지역의 CEO(최고경영자) 중 한 명. 그런 그가 대전상의의 회장을 맡겠다며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상의 회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손 회장이 대전상공회의소에서 활동한지 올해로 30년째가 됐다. 그는 “1980년 이인구 11대 회장(계룡건설 명예회장)이 취임하면서 부름을 받았다”고 했다. 그 때부터 13~14대 이종완 회장(전 영진건설 회장), 15~16대 한만우 회장(한국신약 회장)까지 18년간 상임의원을 지냈다. 17~18대 김주일 회장(금성건설 회장) 때는 6년간 감사를, 19~20대 송인섭 회장 임기 6년간은 부회장을 맡아왔다. 손 회장은 “30년 간 한 번도 상의 행사에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매년 22차례 열리는 목요조찬회 경제포럼에도 20회 이상씩 꼬박꼬박 참석했다”고도 했다. 열심히 활동했고, 헌신한 만큼 ‘차기 회장’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달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WTA(세계과학도시연합) 대전 하이테크 페어’에 대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참석을 못해 내가 외국손님들 점심대접하고 정담도 나눴다. 부회장 6명이 있는데 내가 주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보잉사 부사장 등 경제사절단 40여 명이 대전을 방문했을 때도 영어 브리핑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매일 성경을 외국어로 암송하며 쓸 정도. 그는 “상의 활동을 하면서 외국인이 오면 대접하는 일을 도맡아했다”고도 했다. 그는 5년 전부터 중국어 배우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래서 비서도 조선족 출신 중국인을 채용했다.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웬만한 대화는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 됐다. 그는 한일공작기계협의회 활동도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매년 양국을 오가며 교류가 이뤄지는데 양국 회원 50명 중 유일하게 출석률 100%를 기록했단다. 본인도 지난 10월 일본에서 열린 교류회에서 그 같은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상의도 그렇고, 한일 교류도 그렇고 (나는)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며 “원래 내 스타일이 그렇고 삶의 원칙이 그렇다”고 말했다.’

건실한 제조업체 CEO… 20代 600년 대전 토박이 “자격 충분하지 않나요?”

그는 또 “자신을 대전 토박이 중의 토박이”라고 했다. “20대 할아버지부터 600년을 대전에서 살았으니 1세대를 30년으로 따지면 600년을 대전에서 산 셈”이라고도 했다. 그는 “남선기공은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토속기업 중 하나다. 대전시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향토기업”이라고 덧붙였다.

3세 경영승계…200년 기업을 향해

주변의 도움없이 홀로 고군분투해온 손 회장에게 아들인 손 상무가 합류한 것은 2010년 10월.미국 일리노이대 경영학과를 나온 손 상무는 일본 미쓰이그룹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해 미쓰이에서도 잘 나가던 그가 귀국을 결심한 것은 아버지 손 회장의 전화를 받고서다. 처음 손 상무는 “미쓰이에서 조금 더 일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언젠가는 이어야 할 가업이지만 당장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아들에게 손 회장은 “누군가로부터 기반을 물려받았다는 게 얼마나 큰 ‘어드밴티지'(advantage)인 줄 아느냐”며 회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합류한 손 상무는 현재 남선기공의 기획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해외 전시회를 챙기고,신규 거래선을 뚫는 일이다. 손 상무가 합류한 덕분일까.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매출이 90억원으로 떨어졌던 남선기공은 2010년에는 매출을 500억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또 원전 · 풍력발전용 부품을 깎을 수 있는 초대형 공작기계(모델명 : NS-Ri7585)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 기술경쟁력도 강화했다. 손 회장은 “선친 때 수십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내가 100억원 단위로 키워냈는데,이제 아들이 1000억원 단위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