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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0배 늘린 2代…3代 "100년 기업 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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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81회 작성일 22-10-0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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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에 있는 남선기공 본사.입구에 들어서자 팔각지붕으로 된 기념관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이름은 ‘벽곡관(碧谷館)’.남선기공 창업주 고(故) 손중만 회장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곳이다. 본관 입구에 들어서자 창업주의 흉상이 방문객을 맞았다. 흉상 위에는 ‘개인은 가도 기업은 영속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선친의 창업정신입니다.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100년,200년 가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남선기공 2대 경영을 맡고 있는 손종현 회장(63)은 이렇게 말했다.


창업주의 정신이 반영된 것일까. 남선기공은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들 가운데 하나로 깊게 뿌리를 내렸다. 올해로 창업한 지 61년.작년에는 손 회장의 장남인 손유구 상무(32)가 합류해 3세 경영승계를 준비 중이다.



◆부도 위기를 넘어


남선기공은 손 회장의 부친인 손중만 창업주가 1950년 대전 시내에 세운 공작기계 제조업체다. 국내 공작기계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지금은 화천기공과 함께 국내 공작기계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로 통한다. 남선기공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대 손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손 회장은 1986년 창업주가 작고하자 이듬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1971년 대학(경희대 경영학과)을 갓 졸업한 직후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으니 16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었지만 막상 회사를 꾸려 나가는 일은 벅찼다.


“주변에서는 다들 남선기공이 곧 망할 거라고 하더군요. 나이도 어리고 경영경험도 없는 2세가 넘겨받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죠.”


손 회장은 “선친이 물려 준 회사를 어떻게든 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기틀을 다지는 작업을 시작했다. 1989년 오랜 협력 파트너인 일본 시즈오카철공소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공작기계의 일종인 ‘수직머시닝센터’를 만들어냈다. 좋은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해선 안정적인 주물공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91년 충북 옥천에 주물 생산업체인 만중금속도 세웠다.


손 회장의 노력 덕에 회사는 쑥쑥 커졌다. 1997년엔 ‘100만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위기가 찾아왔다. 1998년 외환위기로 주요 거래처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남선기공도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한 것.결국 1998년 법원에 화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손 회장은 “공작기계 업종은 경기흐름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며 “그래도 법원에서 정한 화의종료기간인 2007년보다 4년 빠른 2003년에 모든 채무를 갚았다”고 설명했다.



◆3세 경영승계…200년 기업을 향해


주변의 도움없이 홀로 고군분투해온 손 회장에게 아들인 손 상무가 합류한 것은 작년 10월.미국 일리노이대 경영학과를 나온 손 상무는 일본 미쓰이그룹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해 미쓰이에서도 잘 나가던 그가 귀국을 결심한 것은 아버지 손 회장의 전화를 받고서다. 처음 손 상무는 “미쓰이에서 조금 더 일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언젠가는 이어야 할 가업이지만 당장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아들에게 손 회장은 “누군가로부터 기반을 물려받았다는 게 얼마나 큰 ‘어드밴티지'(advantage)인 줄 아느냐”며 회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합류한 손 상무는 현재 남선기공의 기획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해외 전시회를 챙기고,신규 거래선을 뚫는 일이다. 손 상무가 합류한 덕분일까.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매출이 90억원으로 떨어졌던 남선기공은 작년에는 매출을 500억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또 원전 · 풍력발전용 부품을 깎을 수 있는 초대형 공작기계(모델명 : NS-Ri7585)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 기술경쟁력도 강화했다.


6개월째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는 어떨까. 손 회장은 “하루라도 빨리 젖을 떼고 스스로 이유식을 찾아야 한다”고 손 상무에게 말했다. 다소 인색한 평가였다. 하지만 손 상무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직원들에게 겸손하게 대하는 걸 보면 오너로서 미덕은 지닌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손 회장은 “선친 때 수십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내가 100억원 단위로 키워냈는데,이제 아들이 1000억원 단위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속기업을 위해 의기투합한 부자


손 회장은 아들 손 상무가 회사 경영에 익숙해지는 대로 가업을 물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에게 “굴뚝산업은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팔,다리를 많이 움직여야 하는 기업가적 근성이 필요한 일”이라며 “그래야 3대를 넘어 5대 · 6대까지 100년,200년 가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상무도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한순간에 일어섰다가 한순간에 망하는 벤처기업과 달리 우리 업종은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상무는 변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손 상무는 “사소한 사례로 지금까지 생산라인 직원들이 정해진 시간 없이 아무 때나 쉬는데 이를 ‘1~2시간 근무 후 휴식’ 등 시스템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회사로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문제점을 고쳐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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